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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11(목)
[펌] 위대한 법조인 효당 엄상섭 선생  

위대한 법조인 효당 엄상섭 선생
-허일태 동아대학교 교수-


2003년 9월은 우리 형법이 제정된 지 50년이 되는 달이다. 이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형사법학회는 형법의 제정경위와 기본사상을 규명하고, 제정형법이 법조 실무와 국민의 실생활에 어떠한 역할을 하여왔는가를 밝혀보려는 학술행사를 준비하여, 50년 전 형법이 제정되었던 그 곳(현재 동아대학교 법과대학)에서 9월 26일과 27일 양일 간 형법제정 5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에 즈음하여 제정형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한 분인 효당 엄상섭 선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8년이 지난 1953년 9월 18일에 제정된 한국형법은 그 해 10월 3일 시행되었다. 이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까지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미군정의 법령에 근거하여 조직된 조선법제편찬위원회 형법분과위원회 소속인 양원일 위원(당시 판사)과 엄상섭 위원(당시 서울지검 차장검사)에 의해 1947년부터 형법전 준비초안의 작업에 들어가 형법요강이 작성되고, 그사이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대통령령 제4호로 법전편찬위원회 직제가 제정되어 이들 양인이 형법전 제정에 관한 군정시대의 법제편찬위원회 사업을 다시금 계속하였다. 그러나 양원일 위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를 대신한 김병로 법전편찬위원회위원장(당시 대법원장)과 함께 엄상섭 위원(당시 대검찰청 검사)이 민족정신과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에 토대를 둔 제정헌법의 정신에 걸맞은 형법 초안을 입안하였고, 이것이 1949년의 정부 초안이다.
이 초안에 근거한 정부안이 1951년 제2대 국회에 제출되고,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엄상섭 선생의 주도로 국회에서 축조 심의 및 보완되어 제정형법으로 태어났다.
즉 엄상섭 선생은 제정형법에 대한 기본사상의 정립에서부터 각 조문의 구성과 그 배열 및 심지어 조문의 자구수정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관여하였고, 국회에서 형법전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도 국회의원들에게 형법의 근본원칙과 기본적 내용을 설명하며, 총론과 각론의 체계적 연계 및 신생 독립국가에서 있어야 할 각 조문과 함께 형법의 민주화를 위한 조문화의 실현 등 형법의 제정에 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형법연구의 태도”, “형법요강해설”, “우리 형법전에 나타난 형법의 민주화의 조항”, “확신범에 대한 대책”, “우리 형법전과 공범이론” 등 주옥같은 그의 논문은 우리의 제정형법이 취하고 있는 기본적 태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국 형법학의 독자성을 확립할 수 있는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그가 우리 형법학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그밖에도 그는 우리 형사소송법의 제정과 그 운용에도 결정적으로 관여했으며, 미군정시절 무너져 갔던 한국검찰의 위상을 바로 세웠던 일등 공신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로서 지낸 것을 평생 후회하면서 다시는 지조 없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언론에 공표했던 그는 인권침해적 사법의 전형이었던 식민지 형사사법의 실무를 현장에서 겪었고, 해방 후 좌우익 간의 극심한 이념갈등으로 인한 혼란, 6·25 사변에 의한 처참한 동족 상쟁과 도탄에 빠진 국민들의 생활고, 게다가 이승만 독재정권의 지속으로 인한 불의와 부패가 만연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가 극도로 침해되는 사회를 몸소 체험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가 확보된 사회의 형성과 유지야말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에 입각하여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실질적 죄형법정주의를 신봉하고, 이러한 이념의 실현을 위해 온몸을 던질 각오로 달성하고자 하였다.

즉 그는 부패한 정치를 펼쳤던 이승만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국민적 원성이 자자했던 국민방위군사건을 비롯하여 중석불 사건 같은 중대한 부패사건에 대해 썩은 부위를 잘라내는 작업을 감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선생은 자신이 겪었던 불의에 대한 체험과 항거 그리고 쉼없는 독서와 연구를 통하여 일제로부터 해방된 신생국가인 한국에서 위정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국민의 인권이 보장되며, 삶의 질이 높아지고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진력하였다.

진정한 법조인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그를 한국형법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보며, 법률가도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형법의 아버지였던 엄상섭 선생이 입증하였다고 할 것이다.

/ 동아대학교 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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