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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는 지난 10일자부터 6일간 보도된 ‘갈등관리 시스템이 없다’ 기획 시리즈를 마치면서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전문가들은 현재 표출되고 있는 공공갈등의 책임 소재와 성격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공론화를 거쳐 사전 예방과 체계적인 갈등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좌담회에는 단국대학교 김태기 교수, 국무조정실 이련주 기획총괄과장,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정관용 기획관리팀장, 환경운동연합 김낙중 국토정책팀장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이제까지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가 이슈화한 적이 없다. 현 시점에서 갈등 관리를 논하는 것이 시의적절한 것인지,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이련주 과장 =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민주화, 다원화되면서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갈등 또한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정부도 이제 갈등 해결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엘리트 관료주의로 대변되는 1970∼1980년대에는 공공갈등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90년대 들어 노사갈등을 주축으로 사회 갈등이 분출됐고 2000년대 들어 확대되고 있다. 이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가 공공기관의 갈등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 김낙중 팀장 = 개인적으로 볼 때 공공갈등에 관한 논의는 많이 늦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서 이미 많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한 뒤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논쟁을 불러일으켜 모두가 대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모든 국책사업에서) 정부가 원하는 방법으로 해결이 됐다. 그러나 남은 임기 동안이나 다음 정부에서도 이 같은 방식으로 국책사업을 추진할지는 한번쯤 짚어 줄 필요가 있다.
▲ 정관용 팀장 = 갈등 관리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노사 갈등을 80년대 초부터 20년 이상 끌어오고 있는데 지금은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환경문제 등 갈등 양상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이제 이슈화시켜 적절한 해법을 찾아볼 시점이다.
▲ 김태기 교수 = 만시지탄이다. 갈등 관리에 대한 문제는 적어도 10년 전에는 논의됐어야 했다. 예전에도 단발적으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흐지부지됐다. 언론들도 갈등 문제를 거의 사건 기사로만 다루다 보니 자극적으로 보도해 갈등을 더 심화한 측면도 있다. 부안과 평택 문제가 심화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언론의 부작용이었다.
― 참여정부는 정부주도형 또는 권위주의적 해결 방식이 아닌 주민참여형 갈등 해결 방식을 모색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갈등 해결 방식이 이전보다 실제로 개선된 부분이 있는가.
▲ 이 과장 = 참여정부 들어 사회 갈등이 많아졌다는 시각은 적절치 않다. 욕구 불만을 참았던 시대를 벗어나 잠재해 있던 갈등들이 표출됐을 뿐이다. 현 정부는 발생한 갈등 상황에 어느 정부보다도 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쳐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과거부터 누적돼 온 갈등들이 참여정부 들어 상당수 정리됐고,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노력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정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할 수가 없다. 대화와 설득, 홍보가 그만큼 중요해졌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합의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두고 이미 정책이 실패했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
▲ 김 팀장 = 지난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등장해 경제 회복에 전력을 기울였고, 또 집권기간 내 큰 사건도 없었다.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10년간 끌어왔던 동강댐 건설을 폐지하기로 결론(2000년)을 내려 무분별한 댐 건설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갈등을 해결해 보겠다는 시도가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한탄강댐의 경우를 보면 의욕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댐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감사원 발표가 나왔음에도 사업 폐지로 확정짓지 않은 것은 정부 의지가 무엇인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경주 방폐장도 결국 3000억원이라는 돈을 주고 산 것 아닌가. 공무원들은 단기적인 성과지상주의에 빠져 있고 관료들도 청와대 눈치보기만 급급하다.
▲ 정 팀장 = 공공갈등을 포함해 모든 갈등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도 물론 국책사업 추진에서 이해관계자의 한 축이지만, 나머지 주체들이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에 대한 학습이 전혀 안 돼 있다. 앞으로 뭔가 개선된 것을 찾는 데에는 이들 각 주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김 교수 = 참여정부는 갈등 문제에 지나친 이상론을 가지고 있다. 갈등문제 해결을 이유로 대화와 타협을 법과 원칙보다 앞세우다 보니까 정부가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정부가 화근을 키워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던 화물연대(2003년) 사태였다. 공공갈등에서는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당사자 역할을 하면서 이념화 논쟁과 극심한 반대운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안 방폐장 문제가 불거진 2003년 총리 주재 회의에도 참석해 봤지만 실망 그 자체였다. 해법을 찾기보다는 형식적 말만 나누더라. 이는 평택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 부지 선정 이후에도 부안은 여전히 민민갈등이 심각하다. 갈등의 후유증을 치유할 수 있는 사후 갈등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
▲ 김 교수 = 부안뿐만 아니라 2000년 의약분업사태 이후 의사와 국민 간에는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사회적 비용의 일종인 ‘불신비용’이 커진 것이다. 부안사태의 경우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식언도 문제였지만 시민단체의 행동도 올바른 태도는 아니었다. 정부는 방폐장이 나쁘지 않다고 선전한 반면 시민단체는 방폐장이 들어서면 지역사회가 끝장난다고 반대 주장을 폈다. 주민을 혼돈에 빠뜨린 것이다. 이는 분쟁 해결의 객체인 시민단체가 조정 역할에 그치지 않고 분쟁 조정의 객체인 주민에게 이념을 주입하는 등 다른 행동을 할 경우 주민이 엄청난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후유증에 대한 치유는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이 나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정 팀장 = 갈등 메커니즘에 따르면 사업자와 환경단체가 개입하는 공공갈등에는 민민갈등이 반드시 일어난다. 실제로 동강댐 건설 예정지였던 강원도 영월 동강 인근 주민은 2000년 댐 건설 백지화 이후 아직도 분열된 상태다. 스위스에는 대규모 사업에 대한 환경단체의 ‘제소권’을 제한하는 법률(호프만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사자도 아닌 객체(환경단체)가 갈등을 촉발시키고 그 이후 빠져 나간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환경단체의 전문성을 살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 김 팀장 = 정부가 공공사업을 적법하게 추진해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방폐장의 경우처럼 정부가 먼저 지역을 선정한 뒤 주민을 설득해 사업을 추진하면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릴 수밖에 없다. 부안사태도 위도를 찍어 놓고 지질안전성 검사 등을 실시한 것에서 비롯됐다. 결국 정부가 민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법과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잘못과 별개로 갈등 지역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주민 갈등을 유발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 이 과장 = 정부가 법과 절차를 어겼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폐장 부지 선정이 늦어져 지역 주민이 찬반으로 분열돼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부가 사업 초기부터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으면 그런 후유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이해 관계자의 의견수렴이 앞당겨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공공기관의 갈등 관리에 관한 법률안(공공갈등 관리법)’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담은 것이다.
― 공공갈등 관리법을 말했는데 그 법은 현재 일부 국회의원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입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과장 = 공공갈등 관리법은 기존의 법·제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국회가 일부 반대하고 있으나 법 내용을 보면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다. 공공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이유를 알아야 갈등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관리법에 포함된 갈등 영향 분석은 정책결정 이전에 이해 관계자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 정책의 갈등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이해 관계자를 정책 결정의 동반자로 여기고 이를 활용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국회와 환경단체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벌여 법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
▲ 김 교수 = 법안에 세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법안의 현실성이 떨어진다. 정부와 이해 관계자 간의 갈등 해결 방식이나 자세가 달라져야 하는데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둘째, 갈등 해결은 협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가능한데 해결 과정을 법제화하는 것은 또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법제화는 갈등 해결 당사자의 유연성을 상실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해관계의 사안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해관계 당사자의 의견만을 적극적으로 청취하면 다른 공공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정부는 화해, 조정, 중재 등 대안적 분쟁 해결 방식(ADR)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나 잘못된 생각이다. 따라서 갈등관리법은 정부의 내부적 협조를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 김 팀장 = 한탄강 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새로운 갈등이 표출되면서 사회적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법·제도를 마련하는 등 국가 차원의 갈등해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본래 국가정책에 대해 큰 방향을 제안하면서도 국가정책을 종종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도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길 원하고 있다. 정부에 합리적인 해결을 부탁하고 싶은 갈등건이 있다. 한탄강댐 건설을 둘러싼 정부와 철원군·군민 간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가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법까지 만드는 만큼 이번에 주민의견을 수렴,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모범을 보여줬으면 한다.
▲ 정 팀장 = 갈등을 예방하는 것은 좋지만, 사업자가 갈등 영향 분석을 하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너무 부담이 된다. 경제, 환경, 사회가 통합돼 가는 패러다임에 따라 갈등 양상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데 현행 갈등 관리체계는 이런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법과 원칙, 절차 등이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갈등 관리 수준과 의식은 여전히 낮을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스위스의 예를 들면 환경단체는 제소권을 갖지만 법과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이를 박탈한다. 우리도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 = 이돈성 특별기획취재팀장
정리 = 신상득·남상훈·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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