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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댐 건설반대 철원군대책위원회 |
[자유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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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탄강네트워크
2004/5/1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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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향을 찾아온 단산리 사람들[탐진댐 건설로 고향 잃어]
애도의 뜻을 표하며, 우리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한탄강 댐 주민 대표자회의는 철원군과 강원도에서 맡긴 "한탄강댐 전문가 용역이 나오는 6월말에 시작해야 합니다.
◎ 이름:유치마을
◎ 홈페이지:http://www.uchimaul.com
◎ 2004/5/10(월) 11:35
"마지막 고향을 찾아온 단산리 사람들"(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
마지막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
금년 10월이면 이제 영원히 고향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없어지는 고향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던 고향 사람들이 비가 내린
5월 9일 (일요일) 마지막으로 그들이 350년을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고향을 떠나면서 언젠가 고향사람들 모두가 물속에 잠기기 전 꼭
고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온 고향엔 단 한 채의 집도 그 어떤 건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의 집 앞 마당에 창고로 사용했던 비닐하우스가 끝까지 고향에 남겠다고
버티는 몇 사람의 집을 강제로 철거하면서 생긴 주인 잃은 살림살이를 보관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주인이 버리고 떠난 하우스안의 버려진 가구들 틈사이로 지난겨울 주인 잃은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살림을 차렸다.
오랜 세월동안 힘없는 누군가의 손때 묻은 물건들은 수몰 지역을 찾아오는 숱한 사람들의
차지가 되고 단지 볼품없게 뒤틀린 가구 몇 점만 남아있었다.
고향 떠난 3년 만에 찾아온 고향은 하필이면 비가 내렸다.
정말 어렵게 마음먹고 찾아온 고향이지만 이곳이 예전에 유치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징표는 없고 단지 도로가에 세워진 버스정류장 표지판과 덩 그랗게 놓여있는
빈 하우스 뿐 이었다.
하우스마져 없었다면 아마도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더 큰 슬픔을 주었을 것이다.
3년 전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는 장경유(75)할아버지는 평생 시골에서 살았기에
보상금 받은 돈을 들고 서울 인근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따라 인천으로 갔고 그곳에서
노부부만이 살고 있다고 했다.
“ 인자 나이가 많아분께 일도 못 하것고 자슥들 옆으로 가믄 그래도 자슥이라도
죽기전에 자주 볼란가 싶어 농사 안 짓는 도시로 갔는디 막상 살아본께 맨 날
고향 생각만 나고 은제 죽을지도 모르 것는디 살아생전 고향 한번 와보는 것이
소원이여서 왔는디 참말로 인자 고향이 아니랑께,
그라고 힘들게 지와집 지서갔고 고상 더럽게 하며 살든 집 가본께 잡초만 무성해불고
무담시 눈물만 나분당께, 그란디 그래도 인자 한번 와봤응께 맘이라도 죄끔 편할 것 갔당께”
눈시울을 붉히면서 어려웠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3년 전에 화순으로 이사를 갔다는 김정순(64) 할머니는 터져 나온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하루 왠 종일 눈물을 훌치고 있었다.
“보상 쬐끔 받아갔고 뭣이 좋다고 그라고 갔는지 모른당께
죽으냐 사냐 고향에 남을 것인디 친구도 없는 왜딴곳으로 가 눈물만 난당께
어찌나 고향 생각이 난지 고향에 가끔 내려오믄 그래도 쬐끔 맴이 편하디 인자 금방
물에 잠겨분다고 한께 속이 터져불라고 한당께
지금이라도 물에 안 잠기믄 이곳으로 다시 와부고 싶당께
그라고 맨날 살 부대낌서 살았던 친구들 만난께 이라고 존디 헤어질 것 생각한께
또 무담시 눈물만 나부네“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난 훌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향 근처 유치면 원등리로 이사를 간 문병덕(45)씨가 할머니를 껴안고 언제라도
자주 찾아오면 고향 보여준다고 할머니를 달래고 있었다.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위행석(48)씨는 25년 전에 고향 떠났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계셔서 자주 고향을 찾았는데 3년 전에 가족들이 모두 고향을 떠났다고 한다.
“물에 잠기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는 친구들 말에 바쁜 일 모두 제쳐 놓고
고향 찾아오는 버스에 몸을 싫고 고향에 와보니 어린 시절 추억어린 골목길도
그렇게 포근하고 따뜻했던 고향집도 온데간데없고 잡초만 무성했다.
고향 마을에서 댐 둑을 쳐다보니 크지도 않고 아주 작게만 보이는 저 작은 둑 하나를
막아내지 못하고 고향을 통째로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고향 찾아온
할머니 할아버지 우는 모습을 보니 괜스리 죄책감이 듭니다.“
2002년 봄 단산리 마을에서 행정 대집행이 이루워 졌다.
자꾸만 늦어지는 탐진 댐 공사를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내 보내고 집들을 철거해야 했다. 댐을 건설하는 "한국수자원공사와 장흥군은 강제로
집을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집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집을 비우지 않고 살고 있었던 위종무(73)할아버지는 산으로 나물을 뜯으로
나가면서 대문에 자물통을 채워두었다.
주인도 없는 집을 철거하기 위해 나타난 "수공의 포크레인은" 대문과 담장을 단 몇 번의
삽질로 밀어 부치고, 아직 이삿짐을 내지 않은 집의 살림살이가 마음에 걸렸는지 안 채는
놔두고 화장실 건물을 밀어 버렸다.
산에 나갔던 위종무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고 이미 쓰러진 대문과 담장 그리고 처참하게
누워버린 화장실 건물을 보고 땅바닥에 망연자실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 냈다.
“ 6.25 전쟁의 그 험학한 전장 속에서 수 십리 길을 도망쳐 오는디 내 머리 옆으로
씽씽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는디도 죽지 않고 살았는디, 오늘날 나를 이라고 비참하게 해부네”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는지 서럽게 살아온 지난날의 응어리진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울분을 토했다.
자식들 따라 김포로 이사를 갔으며 이제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위종무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보니 이제야 고향이 얼마나 좋은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오늘 유치면 단산리 꿈에 그리는 고향을 찾아온 150명의 사람들은 서울에서
재경 향우회를 만들어 18년간 운영하여 왔는데, 고향이 수몰 되면서 고향 사람 모두가
고향을 떠난 향우가 되어버려 지난 2000년부터 고향마을 앞을 지나는 청수천의 이름을
따 청수회라고 이름붙이고 전국으로 흩어진 고향 사람들을 모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장을 맡고 있는 위형택(67)씨는 “고향이 침수되기 전 회원들이 함께 고향을 방문하기로
하여 오늘 이렇게 고향을 찾아 왔다. 어제가 어버이 날이라 70대 이상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하루 늦은 카네이션을 부녀회원들이 마련하여 달아 주었다.“고 한다.
150명을 모시고 찾아온 고향에서 이제 정말 고향땅 밟아보는 것이 마지막 일 것 같다는
위형택 회장은 “비록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의 고향은 이제 없어졌지만 없어진
고향 마을에서 어른신들께 드리는 마지막 효도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탐진 댐 건설로 수몰을 앞둔 유치면은 20여개의 자연 마을과 697세대 2,200명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이제 그들에게는 다시 돌아올 고향이 없다. 금년 여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이
그토록 잊지 못하며 그리워했던 고향은 푸른 물속에 잠겨 고기들의 고향이 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청정철원: 철원군은 수몰마을이 한군데도 없으니 관계없는 내용 기사입니다. 문제는 수몰이 안돼도 인구가 감소된다는데 있읍니다. 청정철원을 위해서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요? -[05/12-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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