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니와 주이] 소설가 샐린저가 그린 "우리들의 자화상"
[프래니와 주이] 샐린저가 그린 ‘우리들의 자화상’
[기타] 2003년 07월 17일 (목) 18:30
■‘프래니와 주이’(J. D. 샐린저 지음/인디북)
샐린저, 그의 소설은 현대 젊은이들의 신화다. 완강한 기성 사회의 위선에 좌절하는 청춘의 고통,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꿈틀거리는 젊음의 열정, 섬세하면서도 치밀하게 펼쳐지는 일상적 언
어의 축제. 그래서 샐린저의 신전은 늘 전세계의 젊은 숭배자들로 북적거린다.
그의 신전을 정면에서 떠받치고 있는 신화는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폭풍 노도의 시기를 견
디며 호밀밭의 파수꾼을 꿈꾸는 문제아 홀든 콜필드의 모습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다. ‘젊은이들
의 우상’, ‘포스트모더니스트 소설가’, ‘서구적 전통소설가’…. 신전 안팎에 즐비하게 새겨진 온갖
찬사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샐린저의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강력한 신화 ‘호밀밭의 파수꾼’이 10대의 방황을 그렸다면, 이번
에 국내 처음으로 완역?^소개되는 ‘프래니와 주이’는 20대의 갈등과 극복을 담고 있다. 샐린저 팬
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수작이다.
원래 이 작품은 ‘뉴요커’지에 각각 실린 ‘프래니’(1955)와 ‘주이’(1957)를 함께 묶어서 출간(1961)
한 것이다. 이렇게 두 개의 단편 소설들을 나중에 함께 묶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드는 경우는 매
우 드물다.
줄거리만 정리하면 너무나 단순하다. 여대생인 프래니는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에 실망하며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이고, 오빠인 주이가 프래니 스스로 이러한 난관을 극복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는 내용이 이야기의 전부. 이밖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간, 플롯 또한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샐린저의 신전
에 들어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릴 정도다.
특히 주인공인 프래니와 주이의 대화는 너무나 생생하여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읽게 되며, 군
데군데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기 바쁘다. 또한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부에서 잠깐 엿보였던 ‘선
(禪)’ 불교 사상이 기독교적인 바탕 위에 자연스럽게 펼쳐져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잠기게 해준
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연극에 몰두하는 20세의 지적인 여대생 프래니. 그녀는 언제부터인지 세상이 모두 공허해진다.
“어떤 지위를 얻거나 대단한 일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구역질이
나며”(44쪽), “병적일 만큼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41쪽)
이러한 공허감은 극심한 자기혐오를 동반하며 프래니의 심리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나는 그런
내 자신이 싫었던 거야”(41쪽),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29쪽), “이렇게 이유도 없이 마
음이 흔들린 건 생전 처음이야.”(35쪽) 그녀는 심지어 애인인 레인 코텔 앞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돌이키지 못한다.
이러한 프래니의 심리는 곧바로 심각한 죄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묘한 죄의식에 사로잡혔
다.”(16쪽), “그녀는 또다시 죄의식에 사로잡혔다.”(17쪽), “그녀는 다시금 죄의식을 느꼈다. 오늘
만 하더라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25쪽)
프래니는 죄의식을 씻고자 자연스럽게 연극을 버리고 ‘순례자의 길’이라는 기도책을 소중히 간직
하며 열심히 ‘예수의 기도’를 하게 된다. 그녀가 애인인 레인 코텔을 처음에는 아주 반갑게 만났다
가 점심을 먹으면서 순식간에 의사소통 단절을 경험하게 될 때도 기도책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기도야말로 프래니에게는 유일한 현실 극복 방안인 것이다. 끊임없이 기도하라! 기도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오빠인 주이는 이러한 프래니에게 문제 해결의 궁극적인 길을 가르쳐 준다. 주이는 프래니에게 글
래스 집안의 맏이였던 죽은 시모어가 강조한 ‘패트 레이디(Fat Lady)’ 이야기를 해 준다. 여기서
패트 레이디란 일체의 중생이자 예수 그 자체를 뜻한다.
패트 레이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은 곧 에고(ego)라는 좁은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 남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 대아의 세계, 대승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뜻이다.
결국 ‘프래니와 주이’에서 샐린저는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욕망을 접고 끊임없이 신에게 기
도하는 대신,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면서 남을 섬기며 열심히 사는 데 삶의 진리가 있다고 강조한
다. 프래니가 연극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TV 배우인 주이가 이를 되돌려 놓는 대목은 그래
서 더욱 암시적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라는 것.
200여 쪽을 약간 넘는 두 편의 짧은 이야기. 이들이 엮이며 새롭게 뿜어내는 상승효과는 사뭇 놀랍
다. 프래니와 주이는 결국 나와 너의 모습이며,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끊임없는 기도 그 자체만으
로 끝나는 대신, 삶의 구체적이고 열정적인 실천이 동반될 때, 우리의 삶과 세계는 의미 있다는 샐
린저의 신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 주간지나 대중소설 넘기듯이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소설을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허병두(책따세 대표·숭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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