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물 정책 평가 - 과잉개발과 물의 위기1)
1. 성장과 개발 시대의 한계
세계 31개국에서 10억 이상의 인구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30억명 이상이 제대로 된 하수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고통당하는 시대에, 한국에서는 과도한 예산과 개발로 물의 순환이 어지럽혀지고, 생태계는 망가지고 있다.
건교부, 환경부, 행자부, 농림부, 산자부, 해양부 등에 의해 매년 10조 이상의 예산이 지출되고, 지난 2002년과 2003년에만도 태풍 ‘루사’와 태풍 ‘매미’ 피해 때문에 각각 9조원과 7조원의 수해복구비용을 쏟아부었지만, 국민들은 더 편해지거나 안전해지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수돗물을 직접 음용하는 인구는 1%를 밑돌고, 수해피해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생태계는 황폐화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수백조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89년 ‘두산전자’의 중금속 배출사건으로 「맑은 물 공급 종합대책」이 수립된 이후 수질개선에만 20조원의 예산이 쓰였지만, 한국은 여전히 수해에 취약하고,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단적이다.
그 동안 정부는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댐을 쌓고,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상하수도 시설을 건설하고,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하천을 제방 속에 가두는 공사를 벌이는 일’에 총력 매진해 왔다. 토지 효율의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하천부지를 메우고,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도시를 위해 댐과 관로를 늘이고, 시설과 기계를 설치하여 하천을 더 쉽게 완벽하게 조작하느라 반복해서 투자하는 것을 물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건교부 수자원국, 환경부의 상하수도국, 행자부 방재국 등에 자리 잡은 건설역군들은 공학과 기술에 대한 신념으로 엄청난 예산과 시설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개발과 성장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이었고,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였기 때문에 이들의 정책은 의심받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물 정책은 한계에 달했으며, 근본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사회가 충분한 용수공급 시설을 갖추고, 위생에 무리가 없는 장치를 완성한 것은 업적이지만, 이들이 지금껏 투자한 비용에 걸맞는 성과인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수리시설들의 효과와 가동율은 공개하기 부끄러운 수준인 반면, 반환경적인 물정책의 폐해는 인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물 환경의 지속가능성, 시민의 정책참여, 행정의 민주성, 예산집행의 효율성 등 심각한 낙제 수준이다.
이 글은 한국 물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이고자 한다.
2. 과잉 개발과 정책 실패의 사례
(1) 실망스러운 댐의 효과
한국에서 댐은 ‘홍수를 막고, 가뭄을 이기고, 전기를 생산하고, 물을 공급하고, 관광지를 제공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광폭한 야성의 자연을 양순한 인공물로 만들고,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그리하여 한국은 ‘국제 대형댐 위원회(ICOLD)’의 명부(2002년)에 1,214개의 대형댐2)을 등록해, 댐 숫자로 세계 7위이자 국토면적을 반영한 댐 밀도로는 단연 1위인 댐 강국을 달성했다. 지금도 건교부는 27개의 댐 건설계획을 추진 중이고3), 농림부는 10년간 2,451개의 농업용 저수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4).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는 댐의 성적표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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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다목적댐 |
생공용수댐 |
발전용댐 |
농업용댐 |
홍수조절댐 |
계 |
|
1910-1965 |
1 |
12 |
5 |
399 |
- |
417 |
|
1966-1975 |
1 |
12 |
2 |
181 |
- |
197 |
|
1976-1985 |
2 |
13 |
4 |
247 |
- |
266 |
|
1986-1995 |
5 |
13 |
4 |
187 |
- |
217 |
|
1996 이후 |
6 |
20 |
6 |
100 |
1 |
117 |
|
계 |
15 |
63 |
21 |
1,114 |
1 |
1,214 | 桄ʷ桬ʷ
우선, 건교부는 댐의 홍수조절능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한국의 홍수피해액은 1970년대 연평균 1,323억원, 1980년대 3,554억원, 1990년대 6,288억원으로 끊임없이 늘어났고(1995년 기준)5), 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5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댐을 건설하였지만 도리어 홍수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홍수 때 유출되는 499억톤의 물 중에서 댐으로 조절할 수 있는 양은 겨우 5%(24억톤) 정도여서, 댐의 홍수조절효과가 한정적임에도 댐의 효과를 과장해 하천변에 건물을 짓고 사람이 살게 한 탓이다.
둘째, 한국에서는 매년 가뭄소동이 벌어졌고, 국민들은 성금을 모으면서 댐의 필요를 들어왔다. 하지만 식수공급 차질, 모내기와 파종의 지체, 농작물 고사 등에 의한 가뭄 피해액은 정확한 통계가 없다6).
가뭄 피해 지역으로 소개되는 완도, 남해, 제천 등은 섬이나 산간의 고지대들이어서, 1,214개의 대형댐과 17,956개의 저수지7)들로부터 물을 공급받을 수 없는 곳들이다. 결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가뭄공포는 과장된 허구일뿐, 한국의 기상 특징에서 비롯된 일부 지역의 계절적인 물 부족은 댐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는 건교부가 추진하는 27개의 댐계획과 농림부가 2014년까지 추진하는 1000여개의 댐이 들어서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셋째, 수력발전이 대안의 에너지이며 환경친화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사가 급하고 강우가 집중되는 한국에서 안정적이고 충분한 수력발전은 불가능하다.
2001년 전체 발전량 285,224GWh에서 수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인 4,151GWh에 불과했다8). 물론 전력공급과정에서 첨두부하를 관리하기 위해 수력 발전이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력발전을 위해 댐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또 수력발전을 하더라도 굳이 댐을 짓지 않는 소수력 발전이 이미 상용화되어 있으니, 대형댐 건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넷째, 생활용, 공업용, 농업용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건교부는 댐이 전체 물 사용량 331억톤/년의 40%에 해당하는 133억톤/년을 공급하고 있다고 자랑한다9). 하지만 이 때 133억톤은 댐에서 취수하는 양일뿐 기왕에 취수해 왔던 양을 빼고 나면, 약 50억톤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이상의 50억톤이 도시문명의 존재를 가능케 한 기반시설인 것은 사실이지만, 필요이상의 댐을 짓기 위해 댐의 효과를 과장하고 천문학적 건설비용10)과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자는 주장은 있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댐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댐 계획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건교부는 2011년까지 12억톤(전체 사용량의 3.5%)이 부족할 것이라며, 27개의 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10년 동안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20%씩 늘어나고, 인구가 6.7% 증가하며, 농지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농업용수는 더 필요하고, 농촌용수공급계획에 의한 공급량은 누락시키는 등 허술한 계산이 그들의 근거다. 그러나 OECD 국가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1980년 이후 1인당 물 사용량은 도리어 11%나 줄고, 인구증가를 감안하더라도 9개국에서는 총취수량조차 감소했다11). 한국에서도 1997년 1인당 하루 물 공급량이 409리터에 달했으나, 2002년엔 374리터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12).
물 절약 의식의 발달, 물 이용 기술의 발전, 재활용의 확산, 송수관 누수 감소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 수요를 위해 앞으로도 댐을 더 세우자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위의 자료들에 따르면 댐으로 조절할 수 있는 자연현상은 극히 일부이며, 댐이 가져온 편익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댐에 의한 피해는 감춰졌으며, 다른 대안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댐 건설부서와 기술자 그리고 업자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주장 대신, 댐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측면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며, 한국의 댐건설 강행정책은 새롭게 점검되어야 한다.
(2) 물의 순환과 유역의 특성을 무시한 방재 정책
2002년의 태풍 ‘루사’에 이어, 2003년에도 태풍 ‘매미’에 따른 가공할 피해가 발생했다. 그 전에는 한탄강에서, 지리산에서, 서울 중랑천과 탄천에서 연례행사로 반복돼, 국민들은 모금과 복구지원으로 고달펐다. 하지만 방재 책임자들은 항상 ‘예산과 인력의 부족’을 탓하고, ‘댐과 제방 그리고 배수펌프 증설’이라는 대책을 내 놓을 뿐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반복되는 장면들은, 이 땅에서 수해로 고통받는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조화된 수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낙동강의 현황을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환경연합이 태풍 ‘매미’ 피해 현장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수해는 부적절한 토지이용과 과도한 자연의 왜곡 때문이다. 낙동강 유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습지의 90% 이상을 농지로 전용하여 하폭을 크게 좁히고, 하천을 직선화해 상류의 강우를 순식간에 하류로 몰아 하류의 침수를 유도했으며, 하구둑 등 무분별한 하천 구조물들을 설치해 홍수가 바다로 배수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원인이었다.
덕분에 낙동강 본류의 수위는 비가 오자마자 상승하기 시작하여, 주변 농경지나 지류의 수위보다 보다 10m 이상 높은 상태로 며칠 동안 지속되면서, 제방과 지류의 갑문을 위협하게 된다. 결국 2002년 태풍 루사에 무너진 제방을 더 높고 탄탄히 쌓아 올린 덕분에 낙동강 본류는 무사한 했지만, 2003년에 태풍 매미때는 본류의 엄청난 홍수가 도리어 수위가 낮은 지류로 역류해 지류의 제방을 부수고 인근 농지를 침수시켰다. 이는 하천부지를 정복해 이를 배타적으로 독점할 수 있다는 개발주의, 인간중심주의의 물 정책이 홍수를 부른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천개발은 꼭 낙동강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전국의 하천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지역의 특성과 기후를 반영하지 않는 채 마련된 개발 계획은 우리 국토 전체를 홍수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의 제방정비와 하천 직선화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소하천들이 포크레인의 삽날에 파헤쳐지고 두터운 시멘트로 뒤덮이고 있다. 이는 상류까지 하천생태계가 황폐화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류의 홍수를 더 빠른 시간에 하류로 밀어내어, 하류의 홍수를 심화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홍수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예산부족을 타령하고 있다13).
태풍 루사가 지나고 강원도의 주민들은 “강이 제 물길을 찾았다”고 했고, 태풍 ‘매미’로 마산이 침수되면서 시민들은 ‘바다는 여전히 매립지를 바다로 알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개발로 넓어진 땅을 보며 기특해 하고 있었지만, 수백km에 걸쳐 쌓은 만리장성(제방)도 개발된 모든 공간을 보호할 수 없다.
우리는 홍수를 하천이 범람하여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위협하는 것으로 배척하고 있지만, 이는 오만한 인간의 편견일 뿐이다. 인간이 하천을 제방으로 가두고 홍수를 그 안에 유폐시키면서, 강바닥은 높아지고, 수질은 악화되었으며, 골재가 사라지는 등 하천이 가져왔던 유용함이 사라진 것도
는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낡은 길을 버리고 샛길을 택하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홍수)’이 사라짐으로서, 현대사회가 엄청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홍수를 제거해야할 대상으로만 삼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이제라도 하천의 길을 열어주고, 바다의 길을 터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하천에 다 제방을 쌓는 방식보다는 사람이 사는 곳은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겠지만, 농사를 짓는 과거의 습지들은 큰 물이 졌을 때 가끔 열어줘야 하고, 상습 침수되는 원래의 습지는 자연에 되돌리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과 더 과감한 개발’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환경의 수용능력을 고려한 하천정책’이다.
더 조밀한 댐, 튼튼한 제방, 줄줄이 늘어선 양배수장을 위한 공사가 아니라, 자연의 선택을 존중하고 물의 순환을 이해하는 하천정책으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콘크리트로 싸 바르는 하천 정비 사업의 중단, 홍수터의 확보, 하구둑 등 홍수에 영향을 주는 시설물들의 해체, 도시지역에서는 불투수성 토지의 복원과 녹지 조성, 빗물 재활용 등 유역차원의 총체적인 홍수 예방 정책 등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기에는 아직도 길이 너무 멀다. 정부는 태풍 ‘매미’ 피해 조사를 단지 3일만에 끝내고, 수해복구계획과 수해복구예산까지 마련해 일사천리로 과거의 복구를 답습하고 있다.
피해 주민들과 언론의 재촉을 근거로, 눈먼 국가예산을 탐하는 지방정치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신속복구’, ‘원상복구’를 실천하고 있다. 무지한 국토개발정책이 국토의 안전과 환경을 위협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음에도, 지역의 특성과 주민들의 의견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은 토목공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3) 시설 중심의 수질정책
1989년 낙동강의 중금속 오염 사건 이후 하천의 오염과 수돗물 파동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정부는 1989년 『맑은물 공급 종합대책』, 1994년 『수질관리개선대책』, 1996년 『물관리 종합대책』등 세 차례나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2002년까지 이미 20조원을 투자했다. 지금도 (환경시설 투자에 사용하는 지방양여금을 포함하여) 환경부 예산 2조 7천억원의 60% 이상이 상하수도를 위한 토목과 건축에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로 2002년에는 상수도 보급율 88.7%14), 하수도 보급율 75.7%15)를 달성했으며, 이 비율은 2010년까지 각각 95.6%와 85%로 높아질 예정이다.
이렇듯 수질정책 또한 거대한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이 근본이다. 비료와 농약을 다량으로 사용하는 농법, 막대한 토사를 유출하는 고랭지 농업 등 농촌지역의 수질오염 대책은 없고, 도시지역과 도로의 비점오염이 통제되지 않으며, 건강한 자연생태계 유지를 통한 자연정화 따위는 뒷전이다.
유역의 토지와 자원 그리고 물을 함께 관리하는 통합자원관리(IRM, Integrated Resources Management)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수질 정책은 관성적인 시설 공사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다. 그나마 환경단체들의 성화에 떠밀려 4대강 특별법이 만들어 졌으나, 여전히 오염총량 규제나 유역관리를 위한 대책들은 실속 있게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몇 개의 대형댐으로 단순화되고 광역화되는 상수망은 철저하게 반자연적인 것이어서, 막대한 부하를 자연에 지울 뿐만 아니라 상수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예산 쓰는 재미에 과도하게 지어놓은 상수시설이나 하수 시설들의 가동율은 30-40%를 넘는게 없어, 예산낭비의 전형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전국 어디에서나 하천수를 음용할 수 있는 환경의 한국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자하고도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국민들은 1% 이하로 추락하였으며, 이러한 국민의 인식은 당분간 변할 것 같지 않다.
이에 비해 정수기 시장의 규모는 2004년에는 1조에 달하고, 먹는 샘물 시장은 7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해저심층수니 이온수니 하는 기능성 물의 시장규모도 급속히 넓어져가고 있다. 거대한 상수도 시설과 하수처리시설이 속속 건설되었지만, 논란은 확산되고 불만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수질 정책이 소비자의 수요와 요구를 외면하고, 물의 순환과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채, 철저하고 공급자들의 입맛과 철학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목적한 급수율, 처리율 등을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믿음을 사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결과를 만드는 데는 실패하였다.
3. 한국 물정책의 대안
Gavan McCormack에 따르면, 일본의 토건업 종사자는 제조업 종사자 480만명보다 많은 600만명이고, 국가예산의 43%와 GDP의 20%를 생산하는 일본경제의 중심 산업이다16). 그런데 이 엄청난 규모의 토건업은 건설성이 공사를 발주하고, 기업들이 공사비의 일부를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게 상납하고, 정치인이 이러한 거래를 지원하는 유착, 가격조작, 뇌물제공의 사슬 구조를 받침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구조의 일본을 ‘토건국가(土建國家)’로 명명하고, 국가의 부를 빨아들여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면서, 재정위기와 환경파괴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건설’이라는 행위가 권력의 재생산과 이윤의 분배과정에서 부수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전후 장기간 지속된 일당지배체제하에서 민중에 기생하는 부류들의 ‘나눠먹기’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토건의 목표와 우선 순위는 공동체와 시장의 욕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확대재생산을 목표로 하는 토건업계 자체의 필요에 의해 확장되고 운영된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토건국가는 미국의 군산복합체라는 용어와 함께, 지속가능하지도 정당화 될 수도 없는 건설업계-건설성-정치가들의 고리를 조롱하는 단어이다.
이러한 McCormack의 분석은 한국에서도 놀랄만큼 정확히 일치한다.
비율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의 제조업 종사자 4,257,000명의 절반에 근접하는 1,850,000명이 건설업에서 일하고 있다17). 이를 배경으로 예산과 인력의 확장을 꾀하는 개발부처들의 부처이기주의, 개발이익만 추구하는 건설업체들, 생태맹(生態盲)의 정치인들, 이들의 하위 동맹자이며 대변자인 학자 등이 강고한 커넥션을 형성하여 지금의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이며 비효율적인 한국의 물 정책이 존재하고 있다.
제3세계 인구의 5명중 1명이 위생적인 물을 마시지 못하고,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어 가는 아이들이 8초마다 한 명 꼴이며, 매일 1만 4천명에서 3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는 지금, 한국의 모습은 이렇다.
소위 개발된 국가들에 속하는 국가 중에서도 유래가 없을 만큼 비효율적인 물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한국은 불필요한 공사를 계획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료의 왜곡과 엉터리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자본의 이익을 쫓아 공동체의 필요나 세계의 공익과는 무관하게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의 물 정책은 강 생태계의 보전, 이곳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과 공동체의 권리 존중,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의 충족, 훼손된 물 환경을 복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정책방향이 변화해야 한다.
첫째, 인공의 시설 대신 물의 순환과 자연의 선택을 존중하는 정책이다.
홍수나 가뭄의 완벽한 극복이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천이 선택한 물길을 존중하는 조화로운 국토 이용을 통해 재해의 가능성을 줄이고, 도시의 녹지를 넓히고 도시계획을 개선해 재해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며,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자연습지와 농지를 완충지로 활용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댐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비용보다 수해위험 지역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농지의 한시적인 침수를 보상하는 비용이 더 경제적인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물 정책을 건설이나 토목에 앞세워 진행하기 보다 자연의 질서를 숙고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무제한 물 공급을 늘리기보다 수요관리를 통해 물이용을 효율화해야 한다. 어떠한 자원도 무한하거나 영원할 수 없으며, 자원의 낭비는 다른 가치와 기회의 상실을 뜻한다. 물이 부족하다고 댐과 상수도 시설만 건설할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를 물 절약사회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수질 개선을 위해 하수처리장을 증설하는 대신 오염발생 자체를 억제하고 하천의 생태계를 되살려 자연의 정화능력에 기대는 것도 방안이다. 수리권을 도입해 상하류의 합리적인 분배를 시도할 수 있으며, 부실한 물 관련 자료와 정보를 개혁해 비효율적인 물 업무를 개선할 수 있다.
셋째, 행정가와 건설기술자들에 의해 독점된 물 정책은 주민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참여로 대체되어야 한다.
물 정책은 물리적인 물의 양을 조절하거나 수질의 수치만을 조정하는 문제를 넘어, 물에 대한 사회의 의식과 물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까지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회 집단(수자원의 생산지와 소비지, 하천의 상류와 하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부와 민간, 사회적 강자와 약자 등) 간의 균형, 미래 세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세대간 형평, 자연의 가치와 환경용량을 존중하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 정책은 행정가들과 건설업자 그리고 몇몇 학자들의 테이블에서 내려와, 시민들과 지자체들이 관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넷째, 물정책은 국가단위에서 수립되고 집행될 것이 아니라, 지역단위로 계획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지역의 특성과 거주민들의 경험에 바탕하지 않는 물정책은 탁상공론에 머물고 있으며,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은 정책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터에 대해 주인의식이 전혀 없으며, 자연재해와 관리실패에 따른 피해는 모두 정부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지만, 지역의 현실과 유역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천편일률적인 물 정책은 비효율을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지방자치, 지역분권의 문제는 정치의 영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물정책의 발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인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다섯째, 분산적인 물 관리 체계를 통합하고 조정해야 한다.
건교부, 환경부, 농림부, 행자부, 산자부, 해양부 등으로 분산되어 관리되는 물 정책은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책임과 권리가 모호할뿐만 아니라 중복과잉투자의 전형으로 비판받고 있다. 홍수예방이라는 똑같은 목적을 위해, 농림부는 농지에서, 행자부는 주거지에서 그리고 건교부는 하천 제방을 따라 설치한 곳곳의 양배수장에서 물을 퍼 올린다.
어디에선가 저장되어야 할 물을 서로 떠넘기니 꼴이니, 결국 예산만 들일뿐 수해에는 아무런 대책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인력과 예산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정부부처들의 이기주의를 해체하여, 원칙과 방향을 갖고 일관되게 정책을 집행할 기구의 구성, 또는 이에 준하는 정부부처의 협력체널 구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차원의 통합은 뒤로 미루더라도, 현장의 유역관리청, 국토관리청 중 하천국, 홍수통제소 등의 조직은 시급히 통합될 필요가 있다.
이제 환경문제에 대한 해법은 개발과 성장의 논리인 시설과 기술이 아닌 생태적인 철학에서 찾아져야 하며, 시설과 물량중심의 물 정책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더 확인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로 후진적인 물정책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뚜렷한 의지로서 개혁에 나서야 한다.
1) 이 글은 3월 27-28일 제주에서 진행된 지구시민사회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2) 국제대댐회(ICOLD), 1998, 『World Register of Dams』,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는 대형댐의 기준으로 높이(15m), 방류량(2천톤/초), 저수지 체적(1백만톤), 댐 상부 길이 등 여러 가지를 제시했으나, 한국은 높이 15m 이상을 대형댐으로 정의해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건교부는 최근 자신들이 발표한 댐 중 1억톤 미만을 중소형이라고 주장하며, 개념을 혼동시키고 있다.
3) 건교부, 2002, 「댐건설장기계획」
4) 농림부, 2001, 「3차 농촌용수 10개년 개획」
5) 건설교통부, 2001년, 『수자원장기종합계획』
6) 언론사들의 단편적인 추측은 있으나, 주무부서인 농림부나 행자부 등에서는 따로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피해액 산정도 어렵지만, 온 나라가 난리를 치는 이유라기에는 금액이 민망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2001년 가뭄에 따른 농가 직접 보상은 30억원 정도였다.
7) 농림부, 2001, 「3차 농촌용수 10개년 계획(보완)」
8) 한국전력 홈페이지 자료실, ‘2001년 발전량 통계’
9)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 2001, 「2001년도 물 관리 통계 자료집」
10) 최근 논의 중인 한탄강댐의 비용은 무려 9700억원이다.
11) OECD, 2001, 『OECD Environmental Outlook』,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번역
12) 환경부, 2002, 「상수도 통계」
13) 정부는 곧 방재청을 신설할 계획이다. 재난피해액의 80% 이상이 수해에 의한 피해이므로, 방재청의 신설은 하천에 대한 예산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4) 환경부, 2003, 「2003 환경통계연감」, 수도법은 간이상수도, 수규모 급수시설, 전용상수도, 우물 등을 상수도로 포함하지 않으므로, 이 수치가 수돗물을 공급하는 비율과는 다르다.
15) 환경부, 2003, 「2003 환경통계연감」
16) McCormack, G., 권숙인 외 역, 1996, 『일본, 허울뿐인 풍요』, 창작과 비평사
17) 통계청 홈페이지, 2003. 12., 업종별 통계 인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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