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33
2005/8/23(화)
우리말과 법률 2 -민법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법률 2 -민법을 중심으로- 이진기 님의 글...


------ 1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맞춤법의 도입에 관한 논의는 우체국관리였던 Nitschke가 프로이센학교철자법을 대체하여 1896년에 공포된 민법전을 맞춤법의 기준으로 하자고 주장함에 따라 결정적인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접한 Duden은 즉시 독일민법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독일민법의 철자법은 구 철자법, 즉 제국출판청의 철자법을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응이 없자 Duden은 서점상의 도움을 얻어 출판물의 약 4분의 3이 학교철자법을 채택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그 결과 타협이 이루어져 표기위원회는 1901년 학교철자법을 기준으로 독일어를 통일할 것을 결의했다. 이 결의는 개혁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독일어권국가의 맞춤법을 통일할 목적에서, 그리고 언어의 표기방법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 더 이상 일반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언어규칙이 없게 되었음을 이유로, 1998년 8월 1일 신 철자법이 도입될 때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독일민법전의 맞춤법에 대한 논의가 철자법문제의 신속한 해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데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일치한다.  

***판례와 법률에 나타난 우리말

한글에 관한 어문규칙이 - 비록 고시의 형태이긴 하나 -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법률과 판결에서 이를 준수하려는 노력을 찾기는 쉽지 않다.  

1. 법관의 독립성은 특권이 아니라, 법관이 원칙적으로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경우에만 삼권분립의 원칙을 담보할 수 있다는 목적적 보호이다. 왜냐하면 법관은 여전히 법률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법관이 판단을 할 경우에 언어규칙은 가치 중립적이므로 그 준수 여부는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아가 어문규칙에 맞는 판결문의 작성은 사법부의 권위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언어규칙의 준수는 법관의 직무의무라고 할 수 있겠다. 법관은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언어규칙에 맞는 우리말로 판결문을 작성하여야 한다. 그러나 법관에 의한 언어규칙의 준수 또한 법률의 구속이라는 범위를 일탈할 수 없다. 법관은 판결문에서 법률이나 법률규정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해야 하나, 법률제목과 법률규정부터 언어규칙을 위반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 우리의 입법현실이다.    

2. 관보에 공포된 법률을 읽는 사람은, 예를 들면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 '독학에의한학위취득에관한법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법령등공포에관한법률', '가등기담보등에관한법률', '소송촉진등에관한법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따위처럼 암호문과 같은 법률제목 때문에 처음부터 당혹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법률의 제목이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아 단 하나의 단어로 구성된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말이 잘못 쓰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아가 '등'이 법률의 제목에 나타나는 경우 법률 전체를 통독하지 않고는 '등'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때가 허다하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형사관계법률에서 더욱 현저하다. 이러한 표기관행은 우리말에 통달한 대한민국 국민만이 법률을 읽을 자격이 있다는 것인지 또는 자신의 위험으로 법제목부터 해석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소극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입법태도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확정성을 요구하는 구체적 법률규정 그 자체에서 나타난다. 아래에서는 민법규정을 중심으로 그 문제점을 짚어보자(이에 관하여 조규창, 한국민법과 독일민법의 관계 - 우리 민법전의 난해성을 중심으로 -, 한독법학 제4호, 1983, 57-68 = 논리와 직관 [조규창교수논문집], 1998, 167-177을 참조).  

1960년 1월 1일 시행된 현행민법전은 우리의 고유법이 아니라 대륙법계의 민법전 가운데 특히 독일민법과 프랑스민법을 절충하여 계수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민법전과 일본법학이 매개역할을 담당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서구제국은 자국어와 공통의 문화유산인 라틴어를 차용함으로써 새로운 법현상 및 이에 따르는 법률용어의 빈곤에 대처할 수 있었으나 전통적인 동양문화와 단절된 이질적인 외국문화를 접한 일본은 飜譯의 방법에 의해서만 서구의 학문을 수용하여 국가근대화를 촉진할 수 있었고, 이는 개념학인 법학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일본법학자에 의해 정립된 법률용어는 심지어 한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을 압도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의 법문화까지 지배하고 있다. 이점에서 법률용어의 개념화가 근대일본법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임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러나 일본법률용어를 계수한 현행민법전은 부정적인 요소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언어감정에 적절하지 못한 일본식 한자어의 차용과 일본식 표현이 그것이다(제26회 국회정기회의속기록 30호, 5 [김병로]). 민법의 입법자는 '주권국가의 체면에 맞게 그리고 민족문화의 선양을 위한 국가적 사업인 민법전제정과정'(제26회 국회정기회의속기록 29호, 15 [민법안제안설명])에서 민법규정을 우리말에 비추어 검토함이 없이 한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한자어를 사용함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 결과 우리 민법전은 한자어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한자어의 예로서 민법 제235, 239조 등 相隣者(이웃 거주자, 이웃 사람), 제222, 223조 閉塞된(막힌), 제229, 239, 244조 溝渠(개천, 도랑), 제230조 堰(둑), 제233조 蒙利者(수익자), 제240조 樹枝·木根(나뭇가지·뿌리), 제244조 貯置(貯藏), 제540조 享受(취득), 제575조 瑕疵(흠), 依한(따른, 따라) 등을 들 수 있다.

되도록 한자의 사용을 피하고 한글 위주로 법문을 표현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용어를 알맞는 한글개념 또는 한자개념으로 바꾸기 위한 전제요건으로 입법자는 필요할 경우 입법이유나 개정이유에서 개념을 정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용어일지라도 일상생활과 법률생활에서의 의미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법률 내에서도 다른 법제도와는 다른 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자를 '흠'으로 대체한다면 의사표시의 瑕疵, 매매법상의 하자 및 제조물책임법상의 缺陷과의 차이가 설명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민법 제216조 이하의 상린권과 관련하여 볼 수 있는 것처럼 상린자, 이웃 거주자, 인지소유자, 토지소유자 등과 같은 관련개념들이 일관성 있게 통일적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  

한편 법률개념의 전문성을 고려한다면, 모든 한자어가 한글단어로 전환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법률행위의 불성립, 무효, 취소, 철회, 해제, 해지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법률개념은 각각 고유한 의미·내용 및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법률은 질적으로 평가된 개념을 매개로 하여 엄격한 법률효과를 부여한다. 그런데 법률가는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인정하는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법률의 권위에 의지하여 현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법률문제의 해결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정확하고 전문가적인 법률개념의 사용은 법률을 잘못 적용하는 위험으로부터 법률가를 구원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다른 한편 법률개념을 순수한 한글단어로 전환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가능하지 않다. 물론 법률개념을 한글로 풀이하는 방법으로 우회적으로 법문을 표현하는 문제도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법문의 추상화를 통해 간결성·절약성을 지향하는 현재의 법조법체계 하에서 이러한 표현방법은 적절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기존의 법률용어도 더욱 치밀하게 개념화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재산법상의 취소(제141조)와 신분법상의 취소(제824조)는 같은 용어임에도 법률효과를 달리한다. 뿐만 아니라 취소, 해제, 철회와 같이 고유한 의미·내용을 가지는 개념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 때에 되도록 다른 논의의 여지가 없도록 구체적으로 조문화할 것이 요청된다. 그런데, 민법전에서는 법률개념을 정의하는 규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과 한자로 표기하는 것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한자어도 우리말의 구성부분으로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우리말 명사가 한자어라는 사실에서 분명하다. 우리말은 느낌의 전달수단으로는 손색이 없으나, 명쾌한 논리의 전달수단으로는 세련되지 못하다. 풍부한 형용사에 비해 명사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나 최현배류의 한글전용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또한 학문의 수단으로서 한자어의 사용과 관련하여 개념전달수단으로서 한자어의 우수성은 부인될 수 없다. 예를 들면 한자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으므로, 한글로 표기할 경우 의미전달이 어려울 경우에는 개념의 정확성을 꾀하기 위해서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한자어의 채택은 정확한 개념전달의 수요를 충족할 수 단어로, 우리의 언어감정에 합치되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한문법을 고려하여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법문의 구성이다. 현행 민법규정을 보더라도 서로 모순된 현상이 지적될 수 있다. 즉, 과도한 법문의 추상화와 지나치게 완만한 법률규정의 구성이 그것이다. 먼저 민법은 준용규정을 함부로 쓰며, 대부분의 단서조항은 본문에 설명한 사실을 생략하고 단문으로, "그러나. . . . 그러하지 아니하다"(제191조 1항, 제683조 3항 등을 비교하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 민법은 '이는' 또는 '그'를 비롯한 대명사를 비롯하여 '전3조'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은 표현을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다. 이러한 관료적·권위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민법규정은 현학적일 뿐 아니라 이해가 곤란하게 되었고, 심지어 법률을 공부한 법학자에게조차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 특히 친족·상속법을 비롯하여 - 압축성 없이 지나치게 사설에 가까운 법문의 표현, 또한 난무하고 있다. 언어의 음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쉼표 하나 없는 장문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입법자의 자세는 권위주의적이며, 이러한 태도는 고쳐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법적인 관점에서 민법을 살펴보면, 주어가 명확하지 않거나 생략된 예가 매우 많을 뿐 아니라(제502조, 제600조, 제679조 등),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제605조), 목적어대신 주어를 사용한 경우(제501조, 제527조, 제633조 등) 그리고 심지어 동사는 하나이면서 주어가 두개로 되어 있는 경우(제566조, 제684조 1항 등)도 있다. 비록 구어체의 우리말이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을지라도, 확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문구성의 방법으로는 반드시 주어를 명확하게 제시할 것이 요구된다. 한편, 민법 제391조와 제756조의 경우와 같이 앞에서 서술한 개념('타인')이 갑자기 새로운 개념('피용자')으로 전환되는 경우(제520조 1, 2항, 제538조, 제565조, 제595조 등) 및 법률규정이 혼란스럽게 구성되어 우리말로 법률규정의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제426조 1항, 제505조 단서, 제678조 1항, 2항). 또한 내용과 표제어가 일치하지 않는 법률규정 및 별개의 표제어가 없이 '同前'으로 표현한 법률규정도 적지 않다. 표제어를 붙이려면 반드시 조문의 내용과 어울리는 표제어를 선택하고, 아울러 '동전'과 같은 표현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밖에 문장상 오류를 지니고 있는 민법규정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와 같은 사항들이 민법의 논리적 해석에 장애요인이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법조법의 특성과 어문규칙에 들어맞는 법문구성과 판결을 바란다

현행민법규정은 법해석과 법적용의 일관성, 통일성, 명확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순·명쾌성 및 절약성을 본질로 한다. 이에 대해 현행민법과 같은 대륙법체계는 입법형식에 있어 기존 법률체계에 따라 법리의 선언에 그칠 뿐 아니라 법문내용의 이해가 어렵고 법률이 암호문과 같아서 일반인이 법률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법률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의 이와 같은 지적은 慣習法이 아니라 법률가에 의해 창설된 法曹法인 현행민법의 경우에 불가피한 귀결이다. 왜냐하면 법률은 전문적으로 법학을 공부한 법률가의 전속개념으로 구성되는 추상적인 전문가적 내용의 집합체이며, 법률개념은 기술용어로서 법률가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일상용어라 할지라도 법률개념화하면 일상생활상의 의미와 달리 법률상 고유한 의미·내용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예. 취소, 계약금). 이 점에서 법학은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유한 개념을 위주로 하는 槪念學이다. 나아가 기본법리의 선언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법체계에서도 하나의 법률규정 및 이에 내포된 기본법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체법률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하나 - 영미법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 이를 일반인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Driedger, Legislative Drafting Style: Civil Law versus Common Law, in: Langage et droit traduction [Essais de jurilinguistique], 1982, 61 ff., 79).

한편 법률이 일반인의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언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를 현행민법과 같은 법조법에 대한 거부이유로 강조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반인이 법률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학문으로서 법학의 독자성 및 이에 따른 법률개념의 전문성으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개별적인 학문세계의 경우에 고유한 용어, 또는 하다 못해 일상생활과 밀접한 자동차에 관한 용어가 어렵다 하여 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난해한 법률규정의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민법이 난해하다는 비판은 법률규정의 '내용'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오로지 법률규정표현의 기술적 형식적 요인에 관하여 타당할 뿐이다. 법률규정을 바르고 좋은 우리말로 多義性이 없도록 구체적인 법률가의 기술용어로 표현함으로써 법률규정 자체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친절한 입법자의 자세가 요구되며, 이는 또한 판결을 담당하는 법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록 명백한 어문규칙의 위반이 있더라도 이미 제정된 법률의 사후적 수정은 입법자의 전속적 권한에 속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언어규범에 들어맞는 법문의 구성은 사전예방적인 기능만을 가질 뿐이다. 법적 안정성의 원칙에 대한 요구는 언어표기 통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올바른 표기는 다시 법적 안정성 및 법률에 대한 신뢰의 확보에 기여한다.
쉽고 좋은 우리말로 법률규정을 표현하기 위해 입법자는 - 구속력은 의문이다 - 우리말에 관한 어문규칙을 신뢰하고 준수할 필요가 있으며, 대표적인 국가의사의 표시수단인 법률은 국민에게 "좋은 우리말"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법률규정은 문학도가 문장수업을 할 정도가 되도록 아름다운 우리말로 세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법률은 비로소 국가에 의한 아름다운 국어의 표본이 될 뿐 아니라 국민에게 더 가까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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