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방희 님 칼럼
2005/7/17(일)
좋은 생각 기고 : 미국 경제의 힘, 억만장자 사회주의자  

좋은 생각 기고 :  미국 경제의 힘, 억만장자 사회주의자


내용  

몇 년 전 부시 행정부는 2009년까지 상속세를 완전 폐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 기업인들의 의욕을 북돋아준다는 명분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상속세를 내야 하는 부류는 연간 5만여명 정도. 따라서 상속세폐지 방침은 다분히 최상류층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정작 기업인들이 이 조치를 반대하고 나섰다. 빌 게이츠, 록펠러, 조지 소로스 등 누가 봐도 알만한 기업인들이 반대에 앞장섰다. 이들은 정부 방침이 미국 경제의 기본 작동 원리를 해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원리다. 상속세가 폐지되면 재능보다는 유산에 의해 경쟁의 결과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저명한 기업인들 상당수는 ‘책임 있는 부’라는 단체를 결성해 상속세 폐지 방침에 대한 반대 입장을 언론에 발표하고 광고하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부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상속세 제도를 미국에 정착시킨 것 역시 기업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1916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 진보적인 법을 도입할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정부 방침을 옹호하고 나섰던 것이 바로 당시 최고 갑부였던 앤드류 카네기였다. 그는 억만장자들이 낸 상속세를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에는 기업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소중한 전통이 있다. 미국 사회는 그런 기업인들에게 ‘억만장자 사회주의자’(billionaire socialists)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이들에 대해서는 ‘우파처럼 살면서, 좌파처럼 생각한다’(live right, think left)라는 해설도 곁들인다.

소수의 기업인들만 이런 전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 다수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미국 기업인들의 기부 문화가 대표적이다. 미국에는 소득의 1%를 기부하는 이른바 ‘1% 클럽’이 엄청나게 많다. 3%, 5% 클럽도 많다. 심지어 빌 게이츠는 무려 1조달러(약 1천2백조원)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 가운데 자식 몫으로 1천만달러만 남기고 나머지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요즘 우리 기업인들의 볼멘소리가 자주 들린다. 반(反)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 못해 먹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노동조합 때문에 회사를 해외로 옮겨야 하겠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전재산을 기부했다는 미담은 종종 등장해도,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인이 미담의 주인공이 된 적은 거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미국 억만장자 사회주의자의 예에서 보듯, 기업인과 부의 힘은 그들 자신의 책임 있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인데도 말이다.
 


* 손에 잡히는 경제 이야기 - 자동차와 경제


내용  
경제라는 자동차에는 두 개의 엑셀러레이터(가속기)가 있다. 하나는 재정 정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금리(통화) 정책이다. 정부의 씀씀이를 늘릴수록 자동차의 속도는 높아진다. 반대로 금리를 낮출수록 속력은 빨라진다.

반대의 경우라면 경제 성장률은 더뎌진다. 따라서 브레이크(감속기)의 개수도 가속기와 마찬가지로 두 개다. 전통적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이 가속기와 감속기를 여하히 활용하느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우리 정부는 2년여 전부터 줄곧 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고민은 아무리 가속기를 밟아도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데 있다. 경제 성장률이 빨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감속의 우려마저 있다.

이 때 운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두고 나름의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의 올해 마지막 금리 결정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가속기를 더 밟자는 쪽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다른 한 편에서는 이에 반대한다. 가속 효과도 확실치 않은데 차에 무리만 간다는 생각에서다. 세계가 모두 금리를 인상하는 마당에 우리만 내리면 부작용이 적잖게 생긴다. 물가가 뛰고 우리 자본이 금리가 높은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크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의 금융통화위원회는 금리 인하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의 승리였다. 그러나 12월, 이번에는 달랐다. 이 부총리의 노골적인 금리 인하 종용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부총리의 자충수가 불러온 결과였다.

어떻든 나는 이런 논란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금리라는 가속 페달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무리 밟아도 자동차의 속력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자동차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엔진이 노후화됐다든지, 전장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가속기만 붙들고 늘어지겠다는 것은 고집이요, 오만이다.

우리 경제라는 자동차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통적인 경제 정책으로 치유하지 못 할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주체 가운데 하나인 가계,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 그 병의 진원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빚이 너무 많아서다. 외환 위기 직전 187조원에 불과하던 가계 부채는 최근 4백65조원으로 늘었다. 무려 2.5배나 증가했다. 게다가 10가구 중에서 3가구가 돈 벌어서 빚 이자도 못 갚는 적자 가구다. 이런 상황에서는 얼마를 벌어서 얼마를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겠다는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경제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동차의 한 축이 고장 나도 단단히 고장났다. 그런데도 가속기가 밟아대면서 뜻대로 안 된다고 심통이다.

좀 가혹한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우리 경제라는 자동차를 끌고 가는 운전자, 정부는 괜찮다. 운전석 바로 뒤에 탄 대기업들도 기분을 낼 만하다.

그러나 중산층과 서민은 자동차에 탔다기보다는 꽁무니에 매달려 끌려가는 형국이다. 정말 죽을 맛이다. 이 계층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빨리 치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경제 정책이다. 노련한 운전자를 자처해온 경제 관료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 아니, 이 사실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동차를 관성에 의존해 몰아왔던 탓은 아닐까?

경제라는 자동차를 끌고 가는 운전자인 정부는 괜찮다. 운전석 바로 뒤에 탄 대기업들도 기분을 낼 만하다. 중산층과 서민은 꽁무니에 매달려 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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