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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5월 전남 장흥군 유치면 금사리 마을 |
| ⓒ2003 마동욱 |
비가 왔다.
벌써 몇 번째인지 금년 봄처럼 비가 자주 왔었던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괜스레 마음이 불안해짐은 곧 수몰될 유치마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3년 5월 이제 수몰지역의 집들은 99%가 이미 뜯겨 나갔고 마을과 집이 있었던 자리는 옛 주인의 이사로 그동안 오랫동안 짓밟아왔거나 독한 제초제의 농약 냄새에 숨을 죽여 왔던 무수히 많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생명들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며 짧은 삶을 예견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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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유치면 금사리 유채꽃 | |
| ⓒ2003 마동욱 |
탐진강 강줄기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유채꽃이 열매를 맺어가고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고개를 내미는 꽃밭으로 변한 수몰지역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면서 왜가리 백로가 살고 있는 금사리 마을을 지나 유치 보림사까지 다녀왔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보림사의 많은 준비에도 다른 해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마치 유치가 수몰되어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버리고 이제 보림사도 텅 비어 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송정리 장터마을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있었다. 지나치다보니 대리 일구 마을에 살다가 지금은 광주 어느 아파트로 이사를 가신 문개열(84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2년 전에 이미 고향(유치면 대리 일구)에서 이사를 갔지만 내가 수몰마을들을 기록하면서 자주 만나는 할아버지이다.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에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가 비 수몰지역에 누워 계시기에 자주 오신다고 한다. 작년 11월인가 고향마을에 찾아왔다가 뜯겨나가는 골목길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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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5월 금사리 마을의 백로 왜가리 둥지 | |
| ⓒ2003 마동욱 |
오늘도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왔는데 비가 온다면서 나설 때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여 왔는데 이처럼 비가 오니 산에 오르는 것이 조금 힘이 들었다며 아버님산소를 다녀오는 중이며 이제 할아버지와 어머니 산소를 가신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인 대리 일구 마을 뒷산으로 할아버지 산소를 이장했으니 그곳까지 다녀서 광주로 올라가신다고 한다.
문개열 할아버지는 금년에 84세의 고령임에도 매우 건강하시어 이렇게 고향이 그립거나 부모님 생각이 나면 고향에 오신다고 한다. 아내와 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늘이 어버이날이기에 부모님 산소를 찾아오신 것 같다.
나이가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부모님과 젊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모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돌아가신 아버님을 어버이날인데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살아 계신 어머님만 생각을 했었던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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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5월 주인 없는 유채꽃밭 | |
| ⓒ2003 마동욱 |
어디를 둘러봐도 아는 사람은 없고 그저 날이 새면 고향에서 지냈던 세월들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는 나고 하시면서 때로는 부모라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아들내외와 손자들이 고마우면서도 자꾸 미안해지는 것은 나이 탓이라고 생각한다면서 143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라 사람도 많고 노인당도 있지만 할아버지는 노인당에는 왠지 가기가 싫다고 하시면서 할머니만 노인당에 나가는데 노인당에 오신 분들의 나이가 많아 할머니 나이가 80인데도 노인당에서 막내라고 한다.
모든 친구들과 친지들이 다 떠나버린 고향 그리고 살았던 자신들의 집과 마을마저도 남아있지 않은 고향 그 고향이 아직은 그래도 물 속에 잠겨있지 않기에 이렇게 찾아오면 땅이라도 밝을 수 있지만 물 속에 잠기고 나면 영원히 볼 수조차 없을 것이라며 아직 건강하고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 고향이 생각나면 언제라도 올 수 있다면서 고향에 오면 마음이 푸근하고 옛날 그렇게 좋게 지냈던 친구들과 이웃들이 마냥 그리워진다며 지금은 모두가 어디로 갔는지 살아생전 서로 얼굴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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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9월 참깨밭에서 만난 할아버지 | |
| ⓒ2003 마동욱 |
비가 내리는데도 자꾸 대리 마을 입구에서 내려 달라 하셨지만 내킨 짐에 할아버지가 찾아가는 할아버지의 어머니 산소가 있는 새로 놓인 이설도로를 따라 대리 2구 망향비와 대리 일구 사람들이 세워놓은 망향비 그리고 오복리 사람들이 세워놓은 망향비를 따라 오복리 한박골 산 등성이 이설도로 위에 옮겨 놓은 할아버지의 어머님 산소를 찾았다.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온 소주와 과자 부스러기를 꺼내 제단 위에 올려놓고 절을 올렸다.
그리고 옛날 자신이 살았던 고향마을을 생각했다. 유치에서 태어나 5남매 자식을 낳아 잘 키웠고 일제 36년을 경험했으며 6.25전쟁을 고향에서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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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5월 어머님 산소에 술과 과자를 올리는 할아버지 |
| ⓒ2003 마동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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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5월 문개열 할아버지 | |
| ⓒ2003 마동욱 |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빨치산을 소탕하겠다며 유치마을마다 불을 질러 유치의 90% 이상의 집들이 모두 불타면서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유치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 스스로 지켜낸 고향이었는데 이제 댐이 건설되어 막 살만한데 나가라고 하여 이렇게 쫓겨 나고 보니 고향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와 하루라도 편히 눈을 감아 보지 못하면서 객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고향에서 쫓겨 갈 때 그래도 다른 어려운 사람들보다는 나름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식들에게 조금씩 나누다 보니 별로 많지 않았다는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들 보상금 타서 가족들 싸움 나고 난리가 나 남남이 되었다는데 큰아들이 먼저 보상금 나오니 여동생들까지도 모두 조금씩 나누어 주자고하여 그나마 형제간의 우애라도 지킬 수 있었다며 큰아들이 고맙다고 아들 자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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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어쩐지 자꾸만 우울해진다는 할아버지 | |
| ⓒ2003 마동욱 |
아픔이 마을마다 일어났다. 형제간에 가족친지간에 돈으로 일어나는 분쟁이 많았고 어느 날 댐이 된다고 하니 생전 나타나지도 않았던 먼 친척들까지도 고향에 얼굴을 보이고 찾지도
않았던 조상들의 산소를 찾았다. 산소를 이장하라고 돈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유치의 무연고 묘지까지도 주인을 만나 이장이 되었다.
댐 건설은 댐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변화를 주었다. 유치 수몰지역의 많은 농토나 임야는 이미 외지인 소유가 많았고 그 외지인들은 보상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야 했다. 수몰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손을 잡거나 마을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보상을 부탁하기도 했다.
또 때로는 일제 때 이전되지 않은 땅까지도 어느 날 새로운 주인을 만나 보상을 받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배운 젊은 사람들은 좀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또한 힘이 있거나 유치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땅 마저도 남의 이름으로 보상을 받아야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보상을 받기에는 조금은 떳떳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재산관리인을 두고 남의 이름으로 보상을 받아 돈을 챙기는 수법까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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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4월 탐진댐 본댐 |
| ⓒ2003 마동욱 |
할아버지는 성묘를 끝내고 다시 내 차에 탔다. 장흥읍으로 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뭔가 부스럭거리시더니 터미널 앞에 도착하여 내리시라고 했더니 비닐봉지에 뭔가를 놓고 아이들 주라며 가셨다. 아내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가져가시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그냥 놔두라고 했다.
항상 나를 마 주사라고 불렀던 할아버지의 마음이기에 받았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 봉투 속에서 몇 개의 빵과 음료수가 들어있음을 알았다. 고향에 와서 고향 구경하면서 잡수시려고 손수 준비했던 빵과 음료수였던 것이다.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만약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상당한 거리를 이 비를 맞으며 고향의 산야를 걸어서 산소에 들리고 차도 없는데 또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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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년 4월 유치면 대리 1구와 2구마을 |
| ⓒ2003 마동욱 |
/마동욱 기자 (madw@lycos.co.kr)
덧붙이는 글
아 물에 잠긴 내고향 (www.uchimaul.com)에 함께 실려있습니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 18개 마을은 탐진댐 건설로 수몰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름: 오마이뉴스
고향은 이제 물 속에 잠길 것이다 













